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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반사

한 해의 끝, 마음을 비우고 새해를 맞이 하는 방법

연말이 되면 거리에는 온갖 불빛과 음악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미완성의 것들을 채우고, 지워야 할 것들은 지워야만 할 것 같다. 나 역시 매년 연말이면 비슷한 기분이 든다. 달력을 넘기며 '올해는 이룬 게 없구나' 같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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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연말의 복잡한 풍경 속에서 어쩌면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무엇을 채우기보다는, 일단 비우는 것, 너무 많은 계획, 너무 많은 후회, 너무 많은 숫자들을 내려놓고 잠시 멈춰 서는 것.

 

며칠 전 나는 동네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창밖에는 연말을 맞아 흘러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어딘가 들떠 있었다. 커피잔을 앞에 두고 가만히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비운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마음을 비운다는 건 물리적인 행위가 아니다. 방안의 물건들을 버리는 일과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그건 아주 미세한 '포기'와 '인정'에 가까운 일이다. 올해 못 이룬 목표가 있다면, 그걸 인정하고 잠시 내려놓는 것. 관계에서 다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그것도 가만히 두는 것, 애써 메우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둔 채로 가만히 바라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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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마음 안에 쌓아둔다. 일, 사람, 돈,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마음이라는 공간은 무한하지 않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담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연말은 그런 것들을 한 번쯤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계기다. 

 

예를 들어, 강아지와 산책을 나갈 때를 떠올려본다. 강아지는 오늘이 연말인지, 평범한 목요일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저 눈앞의 공원을 걷고, 바람 냄새를 맡고, 꼬리를 흔든다. 그 모습이 어쩌면 마음을 비운다는 것과 가장 가까운 상태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강아지처럼 완전히 비울 수 없다. 하지만 흉내라도 내보는 건 가능하다. 내년 계획을 빼곡히 세우기 전에, 올해 남은 며칠을 그냥 흘려 보내는 거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누군가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내거나. 그렇게 작은 일들 속에서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 보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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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사람들이 저마다 '새해 목표'를 적어 내려가는 모습은 늘 흥미롭다. 하지만 목표가 완벽하지않아도 괜찮다. 비어있는 공간이 있어야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너무 꽉 채워진 잔에는 물 한 방울도 더 들어가지 않는다.

 

마음을 비운다는 건 그런거다. 거창한 의미가 아니고, 복잡한 철학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잠시 멈추고,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는 일이다. 

 

창가에 앉아 커피잔을 비우듯, 한 해의 마지막 날에도 마음을 비워본다. 그렇게 비워진 마음 속에 작은 겨울 햇살이 스며들고, 그 햇살은 어쩌면 새해의 첫 날까지 나를 따뜻하게 비춰질지도 모른다. 

 

연말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마무리 하려 애쓰기 보다는 그저 살짝 내려놓고, 조금 비우는 것. 그리고 그 빈자리에 아주 가볍고 따뜻한 숨결 하나를 남기는 것. 

 

그렇게 올해를 보내고,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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